2.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스코치는 얕게 보면 재미있는데 깊게 파고들어 보면 웨스볼 다음편엔 어쩌려고 저러나 싶고 스토리와 박살난 캐릭터성이 걱정되고 뭐 그런 영화였습니다 이 모든게 원작 탓이조
3. 저는 침착하게 한 발 뒤로 물러서 이성적으로 매사를 판단하는 뉴트와 그런 뉴트를 전적으로 신뢰하는 민호의 관계성을 좋아합니다 매니 마니
“안 보던 새에 몸 좋아졌더라?”
민호는 손을 씻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화들짝 상체를 털었다. 고개를 들자 거울 너머로 말쑥하게 서 있는 뉴트의 모습이 보였다. 긴장으로 딱딱하게 경직되어 있던 몸이며 뺨은 낯익은 얼굴을 확인한 후에야 안도감을 느낀 것처럼 부드럽게 풀어졌다. 어깨가 크게 한번 내려앉았다. 씨발 놀래라….
불과 며칠 사이에 너무나도 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단 하루라도 두 발 뻗고 잠을 편하게 이루는 날이 없게 만들었던 그리버의 울음소리도, 미로 너머의 세상으로부터 자신들을 격리시킨 돌벽도 이젠 없다. 시시각각 신경을 곤두세우고 예민하게 경계를 하던 것도 모두 과거의 일이 되었다. 이제 자신들에게 더 이상 위협이 될 존재는 없다. 깔끔해진 모두의 행색과 얼굴이 그걸 증명했지만, 학습된 몸은 아직까지 변화된 일상에 적응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새 옷의 섬유냄새가 채 빠지지 않은 바지춤에 대충 문질러 닦은 손으로 머리를 매만지며 민호는 씩 웃었다.
“아, 어쩐지 넋을 놓고 보더라니. 부러웠냐? 어?”
장난기 다분한 말투에 뉴트는 소리 내어 웃으며 닫혀 있는 화장실 칸에 등을 기대어 섰다. 틀린 말은 아니다. 이전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따뜻한 물을 맞으며 몸을 씻는 동안, 뉴트는 프라이팬에게 사정없이 물을 뿌리며 장난을 거는 민호의 뒷모습을 보고 있었다. 최초의 기억이 시작된 삼 년 전에도, 뉴트는 저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그 땐 지금보다 어깨도 좁고, 마르고, 키도 나보다 더 작았던 것 같은데. 어느덧 함께 자라 절대 탈출할 수 없을 것 같던 미로 밖으로 나와 있다니.
시선을 옮기자 민호가 머리를 만지다 말고 아주 신기한 걸 발견했다는 표정으로 거울 너머의 자신을 보고 있었다. 눈매가 가늘게 접히고 입가가 어설프게 벌어졌다.
“왜?”
“아니, 글레이드에서 나오니까 좋긴 좋다. 네가 장난도 다 치고.”
“그야……다 끝났잖아.”
끝났다, 라.
뉴트의 말이 맞았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에 의해 다 함께 만나 부딪히고, 그러다 융화되어 서로의 가족과 형제가 되고. 하나의 공동체로서 무언가를 이루어 내고 소소하게 즐거워했던, 혹은 그 모든 걸 나누던 이들을 잃으며 슬퍼했던 기억들. 삼 년의 시간. 그 삼년 간 밖으로 나가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했던 모두의 노력에 비해 결과는 너무나도 허무했다. 복도를 따라 걷자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던 탈출구, 어린 척의 죽음, 미로에서 탈출한 우리를 데리러 온 완전 무장 상태의 남자들. 그리고 그들에게 이끌려 헬기에 올라탔을 때 민호는 비로소 자신들이 얼마나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살았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삼 년 동안 자신들의 전부였던 세계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더 큰 세상의 일부분에 불과했다. 그리고 지금, 모든 기억이 깃든 세계를 내려두고 자신들은 이곳에 와 있다.
이게 끝이라고 생각해?
뉴트는 조금 망설이다 답했다. “…끝이었음 좋겠지.” 그래, 그 어떤 대답보다도 솔직한 심정일 것이다.
그리고 그 말에서 민호는 뉴트가 그동안 부대장으로서 얼마나 많은 짐을 짊어진 채로 오랜 시간을 버텨 왔는지 알 수 있었다. 자신 역시도 그러했으니까.
한결 여유롭고 밝아진 친구들의 태도는 민호로 하여금 마치 글레이드에서의 편안했던 몇몇의 일상들을 떠올리게 했다. 물론 글레이드에서는 따뜻한 밥도, 폭신한 침대도 없다.
…하지만 다른 친구들이 있었지.
자신의 손으로 새겼다 타인의 손에 의해 지워져야 했던, 이젠 돌아가지 못해 지울 수가 없어졌지만 지워야 하는 벽 위의 이름들. 민호는 밤이면 그 지워진 이름들의 얼굴을 회상했다. 꽤 오랜 기간 동안 러닝 파트너가 되었던 벤과 찰리, 조지, 미로를 탈출하며 자신 대신에 그리버에게 찔렸던 제프를 떠올린다. 그러고 있자면 바로 옆 침대에서 알비를 부르는 뉴트의 잠꼬대도 몇 번인가 들을 수 있다.
어쩌면, 아니 아마도 우리는 그 애들의 희생을 밟고 올라서 살아 남은지도 모른다. 친구들의 앞에선 내색하지 못했지만 민호는 종종 그런 것을 생각했다.
“만약 이게 끝이 아니라면?”
민호는 천천히 뒤돌아 뉴트가 그러했듯 세면대에 등을 기대었다. 축축한 물기가 티셔츠 안으로 스며들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다들 지쳤다고. 여기서 더 위험한 일이 생기길 바라?
죽음에 대한 두려움. 남아 있는 친구들을 이끌어야 한다는 부담감. 그 나이에 으레 누려야 할 가족의 사랑과 관심 대신 짊어진 짐은 열여섯, 열일곱의 어린 소년이 감당하기엔 너무나도 무겁고 때 이른 것들이었다. 아직 덜 여문 어깨에 주렁주렁 매달린 그것들을 당장이라도 벗어던지고 싶을 그에게 또 다시 중압감을 부과하려는 의도는 조금도 없었다.
불편함을 숨기지 못하는 뉴트의 표정에 민호는 필사적으로 뒷말을 골랐다. 아니 너는 무슨 말을 그렇게……, 내가 미쳤냐? 몇 번이나 죽다 살아났는데 그 짓을 또 다시 겪고 싶게? 우리에게 위기가 닥쳤으면 좋겠다는 게 아니고, 만약에 말이야. 그럴 리 없었음 좋겠지만, 아주 만약에…. 생각한 말은 많았지만 입 밖으로 갈무리되어 나오진 못했다. 논리적이었던 알비나 뉴트와 달리 제게는 의견을 다듬어 전달하는 소질이 없었다.
하지만 글레이드를 빠져나온 일행들 중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한 둘이다. 작은 표정 변화에서 오는 감정 기복에서부터 사소한 말버릇까지, 이제는 서로에 대해 아는 것보다 모르는 걸 세어 보는 게 빠를 정도다. 차곡차곡 쌓아 올린 시간만큼 뉴트 역시 표현에 서툰 민호의 무뚝뚝함을 잘 알고 있었다. 잠시 인상을 쓰던 뉴트는 이내 한숨 같은 대답을 토해냈다. 그런 일이 생기지 않길 바라지만….
“우리들을 위협하는 존재들과 끝없이 싸우겠지. 너도, 나도. 우리 모두가 살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향으로.”
그래, 그게 네 장점이지. 민호는 속으로 생각했다.
언제나 뉴트는 그랬다. 먼저 글레이드에 적응해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본래 차분한 그 애의 성정 탓일 가능성이 크다. 그에게는 감정에 휩쓸려 충동적으로 움직이는 아이들의 질주에 제동을 걸고 냉철하게 한 발짝 뒤에서 모든 걸 지켜보며 때를 기다리는 어른스러운 면모가 있었다. 보급 받은 토마토 모종이 자라지 않아 누군가가 그만 뽑아버리자고 어깃장을 놓을 때도 끝까지 참고 기다려 수확을 해낸 게 뉴트였고, 함께 러너로 미로를 달릴 때 일정한 순서에 따라 미로가 움직이고 있다는 원리를 발견한 것 역시도 뉴트였다. 딱히 입 밖으로 내어 말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 자신이 놓친 부분까지 온전히 채워주는 뉴트를 민호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신뢰하고 있다. 그 언젠가 알비가 그를 부대장으로 괜히 뽑은 게 아니었다. 정말로, 민호는 뉴트와 함께 글레이드를 나올 수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물론 다른 이유도 있지만 그건 좀 더, 나중에. 여기서 나가서, 너도 나도 우리 모두가 제 자리를 되찾을 때.
“그 다짐 변하지 마, 부대장.”
“너도…… 치프 러너.”
그렇지, 말하지 않아도 내가 무슨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건지 알겠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너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