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님께서 집 근처에 케이크 진짜 맛있는 가게가 있는데 진짜 제멋대로 문 연다고 하셔서.. 그 얘기 기반으로 자기 좋을대로 장사하는 파티숴l 뉴트 & 케이크가 너무 먹고싶은 체ㅔ대생 민호 썰을 트윗에서 풀었었는데 티슷에도 정리해서 올려보았읍니다
“와 나 씨…,”
고개를 치켜들고 한숨처럼 뱉어 낸 욕은 끝을 맺지 못하고 도로 삼켜졌다. 흰 도복에 노란 띠를 동여맨 차림으로 상가 입구에 우르르 서서 학원 차를 기다리는 한 무리 초딩들의 눈동자가 일제히 제게 향해 있는 것을 눈치 챈 민호는 큼큼, 헛기침을 하며 머쓱하게 고개를 돌렸다. 게임을 하다 말고 댁네 부모님이 평안하신지 안부를 묻는 것부터 시작해서 듣도 보도 못한 욕을 구사하는 요즘 초딩들을 볼 때마다 조국의 미래는 애진작에 글러 먹었구나, 라는 사실을 여실히 느끼지만 그래도 아이들의 귀감이 될 어른으로서 최소한의 양심은 있었다.
바닥에 떨어트린 스포츠 백을 줍기 위해 굽혔던 허리를 바로 펴자 머리로 쏠렸던 피가 다시 정상적으로 돌며 일순 핑, 눈앞이 아찔해졌다. 대회가 코앞이라 먹는 걸 줄이고 운동량을 늘렸더니 고새 몸에 신호가 왔다. 한 쪽 눈을 찡그리며 민호는 손바닥으로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이럴 땐 단 거, 단 거 먹어줘야 하는데.
그리고 잠시 핼쑥한 낯을 하던 시선은 자연스레 전면을 향해 머물렀다. 주인장의 취향인지 통유리 너머로 보이는 내부 인테리어와 잘 어울리는 무채색으로 디자인 된 간판을 노려보는 눈매가 금세 뾰족해졌다.
SOLD OUT.
매번 올 때마다 매진 팻말을 걸어 놓고 청소 중이길래 그래 얼마나 대단한가 맛이나 보자고 평소보다 일찍 왔더니 오늘은 휴일. 뺀찌를 먹은 횟수도 벌써 한 손으로 못 꼽을 정도로 많아졌다.
오늘까지 도합 다섯 번째.
민호는 굳게 닫힌 문 밖에서부터 어쩐지 달콤한 향이 감도는 것 같은 저 가게 안으로 발을 들이밀고 무언가를 사먹어 본 경험이 단 한 번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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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한 날 매진에, 그게 아니라면 밥 먹듯이 휴업일. 수많은 고난과 역경을 거쳐 어렵사리 가게에 들어와 보니 이번엔 카운터에 사람이 없다. 이제 보니 장사도 순 제멋대로 하고 있잖아. 아 저기요! 민호는 텅 빈 카운터에 가슴팍을 붙이고 상체를 기울이며 언성을 높였다. 이쯤 되니 배고픔이라는 인간의 본능적 욕구보다는 오기가 앞섰다. 그놈의 케이크, 오늘은 기필코 손에 넣고 만다.
팔짱에 짝다리를 짚고 선 채 아, 한 번 더 불러 봐? 하고 속으로 짜증을 내던 차에 픽업대 뒤의 조리실 커튼이 확 걷히며 누군가가 튀어나왔다. 흰 조리가운 차림으로 미루어 보아 이곳의 파티셰인 것 같은 남자는 뜻밖에도 금발의 외국인이었다. 고등학교는 물론이요 대학교 교양 시간에도 출첵을 하기가 무섭게 엎드려 숙면을 취하며 영어와는 담을 쌓아왔던 민호였던지라 그는 내심 좀 당황했다. 어, 뭐라고 해야 하지. 아, 아이 원트 어 케이크…?
그러나 조악한 실력으로 제가 아는 단어를 총 동원해 떠듬떠듬 하나의 불완벽한 문장을 -머릿속으로- 만들어 내는 민호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섬세하지만 예민해 보이는 눈길로 그를 한번 훑은 파티셰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은 매우 유창한 한국어였다.
“오늘 장사 안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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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예? 민호는 제 귀를 의심했다. 잘못 들은 거겠지? 그러나 그가 제대로 들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듯, 남자는 바지 뒷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내밀었다. 재촉하듯 턱짓을 하며 휴대폰을 흔드는 제스처에 민호는 휴대폰을 넘겨받았다.
젊은 사람이 쓰기엔 한참 구닥다리 모델이었다. 와 이런 거 들고 다니면 명동 폰가게 앞에서 안 붙잡히나…? 잠시 삼천포로 빠지던 의식의 흐름은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남자의 진중한 표정에 의해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아니 번호를 달라니 지금 존나 이게 무슨 상황…?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는 민호의 속마음을 꿰뚫어보기라도 한 것인지 남자는 텅 빈 진열대를 가리키며 말했다.
“가게로 연락을 해서 따로 예약을 하시란 얘기에요. 이 시간에 예약도 안 하고 오시면 매일 이렇게 품절돼서 놓치니까.”
다분히 사무적이며 담백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남자를 보며 민호는 뒷목을 벅벅 긁었다. 아 그럼 그렇지 내가 무슨 생각을 하하 미친……. 매번 늦게 가게를 방문해 케이크를 놓치는 고객을 위해 친절하게 예약 서비스를 제공하려던 것뿐인데 애꿎은 남자를 제 머릿속에서 수상쩍은 사람으로 만든 것이 미안하고 또 잠깐이라도 그런 불순한 생각을 한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민망함에 조금 달아오른 얼굴로 빠르게 액정을 두드린 후 그는 카운터 너머의 남자에게 얼른 휴대폰을 내밀었다. 잠시 후 민호의 주머니에서 두어 번 진동이 느껴졌다.
그쪽이세요?
제 휴대폰에 뜬 낯선 번호를 가리키며 묻자 정말 오늘 영업을 마감하는 모양인지, 남자는 조리모를 벗으며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