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트민호 / 불가항력
b 2015. 5. 1. 22:27 |1. ~단문연성 만만세~ 보고싶은 장면만 쓰니까 이거 진짜 편하네!
2. 멋진 키워드를 주신 루버님께 리스펙트☆
3. 키워드: 「서머타임」, 「시차 9시간」
4. 브금은 ㅂㅅㅋㅂㅅㅋ의 여ㅓ수 밤바다로 바꿔 들으셔도 무관합니다 원래 그거 듣다가 생각난 썰이라 그래
아마도 내일은 날이 흐릴 모양이다.
날씨가 좋으면 저 멀리 수평선 위로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이름 모를 산도 오늘은 밤의 장막 너머로 자취를 감추었다.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모호했다. 턱을 빼고 좋지 않은 눈매를 좁힌 채 멀리 시선을 두면 깜빡, 깜빡. 만선의 꿈을 품은 고기잡이배의 점멸하는 불빛들만이 반짝이는 긴 선처럼 이어져 수평선의 존재를 알렸다. 구름 사이로 드러난 달빛이 넓은 바다를 가르며 파도와 함께 해변에 와 닿았다.
그런 고즈넉한 분위기와는 달리, 7월 말의 해변은 무척 소란스러웠다. 야경이 멋진 해수욕장을 끼고 있는 이 동네에는 백사장과 사 차선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몇 년 사이에 카페며 술집 밥집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새벽 늦게까지 장사를 하는 횟집이며 조개구이 집의 야외 테이블에는 이제 퇴근 후의 고단함을 위로하기 위한 넥타이 부대보다 스냅 백에 맨투맨을 입은 청년들이 더 많아졌다. 제법 구색을 갖추었으니 본격적으로 관광객들의 주머니를 털겠다는 심산인지 시에서는 곧 막대한 예산을 들여 이곳에 축제를 개최하겠다 공표했다. 날짜에 임박해 올수록 해변 가의 분위기는 점점 더 고조되고 있었다. 시끌벅적한 노래와 함께 LED 간판을 잔뜩 매달은 나이트클럽의 홍보용 트럭이 편의점 앞 도로를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자?
“아니.”
-옆에 되게 시끄럽다. 어디야?
“바닷가.”
-바람났어?
“아 이런 똘추 같은 새끼. 알바하러 왔거든요?”
폭죽놀이 세트와 아이스크림 다섯 개를 사간 대학생 무리가 문을 밀고 편의점 밖을 나서는 모습을 눈으로 쫓으며 민호는 본격적으로 휴대폰을 고쳐 쥐었다. ‘뻔히 알면서 뭘 자꾸 물어. 의심 병이냐?’ ‘어. 너 막 핫팬츠 입고 다니는 여자애들 뚫어지게 쳐다보고 그럴 것 같아서 존나 의심돼.’ 의심과 추궁을 말하면서도 촘촘하게 구멍이 뚫린 수화기 너머로는 낄낄 웃음이 새어 나왔다. 변성기를 훨씬 지나쳤음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덜 여문 소년의 것처럼 허스키한 웃음소리를 듣는 민호의 입가에도, 실은 미소가 머무르고 있었다. 저를 의심 하냐며 바람 난 남자친구의 흉내를 낼 때부터 그는 장난스럽게 웃고 있었다.
오늘 따라 잠이 안 오길래 전화해 봤어.
배터리가 부족하다는 알림 음에 포스기 아래에서 굴러다니던 충전 잭을 찾아내 연결했다. 진동이 한 번 울림과 동시에 화면이 밝아졌다. 통화 창이 활성화된 화면 위 작게 표시된 시간은 어느덧 자정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알코올 냄새를 풀풀 풍기며 혀가 반 꼬부라진 취객들이 가게를 찾을 시간이다.
턱을 치켜들고 술과 야경에 취한 사람들이 일행의 부축에 거리를 휘청대는 풍경을 흘긋, 살피며 민호는 머릿속에 떠올린 시계의 바늘을 움직였다. 조금 더 짧고 통통한 시침을 반대 방향으로 아홉 번. 방학을 맞이해 낮과 밤이 뒤바뀐 대학생에게 서머타임 같은 건 의미가 없었다. 해가 중천에 뜨고도 남았을 시간에 잠드는 걸 보니 아마도 밤새도록 영화나 책을 보고 뒹굴 거렸을 게 뻔했다. 혀를 쯧쯧, 차줄까 하다가 그가 굳이 낮밤을 바꾸어 생활하는 이유를 상기해낸 민호는 다른 이야기를 꺼내었다.
“잘 때 노래 너무 크게 듣고 그러지 마.”
생각해 보니 모든 일의 시작은 녀석의 그 버릇 때문이었다.
새벽 늦게 까지 과제에 시달렸거나, 혹은 시험 공부를 했거나, 아무튼 잠이 조금 부족하고 피곤한 날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면 뉴트는 백발백중 가위에 눌렸다.
그러니까, 막 누워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잖아. 오늘 점심에 먹은 파스타가 맛있었다던지, 커피를 마시며 했었던 친구의 웃긴 농담을 곱씹어 본다던지, 뭐 그런 것들. 그런 걸 생각하다가 점점 잠이 밀려오면 의식의 흐름이 제 멋대로 흘러가는데,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몸이 침대 밑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 들면서 확, 몸이 안 움직이는 거야. 근데 이어폰 꽂고 노래 들으면서 자면 또 괜찮고 그렇거든.
아침 수업 때마다 눈 밑에 그늘을 달고 피로한 낯으로 토로했던 그의 말을 기억하고 있던 민호는 어느 날 밤늦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뭐 듣냐? 볼륨 크게 듣고 그러지 마라 귀 버려.
그리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낮의 시간을 공유한다고 봐도 좋을 정도로 하루 종일 붙어 다녀 놓고도 전화를 하니 할 말은 자꾸 생겨났다. 오늘 수업 시간에 교수님이 한 말 실수부터 시작해서 복사실에 새로 바뀐 파트타임 여학생이 릴리 콜린스를 닮았고, 그래서 친구 중 한 놈이 어떻게 껄떡대 보려다가 실패했다는 이야기, 리버풀이 또 져서 열 받지만 팀 세탁을 하지는 않을 거라는 뭐 그런 쓸데없는 이야기까지. 그러다가 수화기 너머로 더 이상의 대꾸가 없고 고른 숨소리가 들려오면 민호는 전화를 끊었다. 한동안 뉴트에게 잠자리에 들기 전 엉킨 이어폰을 풀기 위해 사투를 벌여야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그 날도 그랬었다.
운동을 마친 후, 씻고 기숙사의 침대에 등을 붙이고 자연스럽게 뉴트에게 전화를 건 민호는 마치 전화기에 대고 일기를 쓰듯 하루의 일과를 풀어내었다. 그날따라 그는 유난히 새벽 늦게까지 민호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하다 하다 할 얘기가 없어 ‘지금 기숙사 밑으로 고양이 지나간다? 두 마리.’ 와 같은 말까지 꺼낸 민호가 야, 좀 자라. 낮잠 잤냐? 하고 웃음 섞인 핀잔을 주었을 때, 조금 진득하게 찾아온 정적을 가르고 뉴트는 가만히, 잠든 새벽처럼 가라앉은 목소리로 민호를 불렀다.
야.
근데 나 너 좋아하는 거 아냐?
…그러냐.
둘은 이튿날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만나 같이 밥을 먹고 수업을 들었다. 수업을 들은 후 함께 공을 차고, 맥주를 마시고, 똑같은 일상을 여러 번 반복하고 서로의 기숙사와 플랫에 놀러 가고. 과자를 씹으며 TV 앞에서 영화를 보고 어쩌다 보니 손도 잡고 허리에 손도 두르고 입도 맞추고 자연스럽게 그러고 있더라. 그래, 뭐 다 그런 거였다. 생각해 보니 당시 뉴트의 고백에 민호는 이렇다 할 대꾸를 내어놓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민호의 침묵에 대해 뉴트가 초조한 기색을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침묵은 거절의 또 다른 표현이 아니었다. 굳이 직접적인 말을 하지 않아도 대답은 그에게 보여주는 행동으로도 이미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걔한테 새 여자 친구가 생겼을까, 안 생겼을까, 하고 동생이랑 내기를 했는데 말이야….
어엉. 예전에 저녁 식사를 함께 하면서 얼굴을 익혔던 뉴트의 여동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민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른한 목소리가 점점 늘어지는 걸 보니 슬슬 졸음이 밀려오는 모양이었다. 물 먹은 솜처럼 무거워지는 눈꺼풀을 반 쯤 뜬 채로 베개에 붙인 뺨 사이에 휴대폰을 집어넣고 입만 중얼중얼 움직일 모습이 눈에 선했다.
지금, 그러니까 오늘 같은 경우야 두 사람이 각자 낮과 밤이 바뀐 올빼미 생활을 하고 있으니 이렇게 타이밍을 맞추어 통화도 할 수 있고 그런 것이지만, 물리적 거리만큼 벌어진 시간 탓에 둘은 좀처럼 일상을 공유하기가 어려웠다. 정오를 훌쩍 넘겨 일어난 뉴트가 토스트에 잼을 바르고 차를 끓이며 조금 늦은 하루를 시작할 때, 민호는 지구 반 바퀴만큼 먼저 달린 하루의 일과를 마무리하고 지친 몸을 이불 위로 눕히곤 했다. 오늘처럼 뉴트가 어거지를 써서 민호의 생활 패턴에 저를 맞추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달리기처럼 숨을 고르고 멈춰 서서 기다려 줄 수 없는 시간이 민호는 못내 아쉬웠다.
런던으로 돌아가 남은 학기를 이수하고 졸업까지 완료한 미래에는 시차 말고도 더 많은 것들이 우리를 갈라놓을 텐데.
하지만 더 먼 미래에 함께 하기 위해 지금 이렇게 잠시 떨어져 있는 거 아니겠어? 그러니까, 말이 너무 거창한 것 같지만, 더 큰 행복을 위해 잠시 거쳐 가는 고난 같은 거지. 부모님에게 최대한 손을 벌리지 않고 다음 학기를 보내기 위한 생활비와, 그보다 더 훗날의 시간들을 위해 마련한 두 개의 통장에는 오늘도 착실히 노동의 대가가 쌓이고 있다.
저와 뉴트는 같은 꿈을 꾸며 같은 방향으로 달려가는 사이였고, 꿈을 쫓아가다 보니 그것이 그리는 미래에 서로가 있었다. 그러니까 단순히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있고 싶어서, 라는 이유만으로 그 길을 택한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애도 아니고. 이제는 둘 다 책임의 무게를 깨닫고 현실을 직시하는 나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줄 수 없었던 시절부터 같은 꿈을 꾸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언젠간 이렇게 만나게 될 운명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해 보았지만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연인이라 이름 붙여 마땅한 사이였지만 역시 다 큰 남자애들끼리 이런 표현은 좀 낯간지럽다.
“…그래서 전화를 한 지 삼십 분이 지나도 안 오길래 내가 다시 전화를 했는… 야, 자냐?”
-…….
“자나 보네. 전화 건 지 십 분 만에 잠들 거였으면 전화는 왜 했냐?”
-…….
“…그, 너 자고 있으니까 하는 말인데…… 진짜 자는 거 맞겠지? 깨지 마라, 엉?”
이제 이 주만 지나면 만날 수 있는데 이 주가 왜 이렇게 긴지 모르겠다.
…보고 싶다, 임마.
잘 자.
동시에 꾸벅 꾸벅 잘 조는 새벽 타임 아르바이트생들을 배려한 차임벨이 울리고 금방이라도 모텔로 직행할 법한 분위기의 커플이 편의점 안으로 들어섰다. 아… 이거 직접 얼굴 보고 말하는 게 아니라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민망한 건 똑같네. 뾰족하게 모은 입을 옆으로 비틀며 입술 껍질이나 잡아 뜯고 있던 민호는 갑작스런 손님의 등장에 불에 데인 듯 놀라며 휴대폰을 내려두었다. 마치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마음을 들킨 사람처럼. 그리고 꼭 가게 밖의 술 취한 사람들처럼 벌개진 얼굴로 허리를 바로 펴고 콘돔 박스를 집어 드는 남자의 뒷모습이나 졸졸 쫓았다.
그래서 그는 아직 끊어지지 않은 전화 속 상대가 앵무새처럼 자신의 마지막 말을 곱씹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다급히 무언가를 내려놓는 기척이 났고, 「어서 오세요!」놀란 기색이 역력한 인사에 가려져 제 말은 전해지지 못했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민호가 돌아오기까지 앞으로 딱 이 주가 남아 있었다. 방학 동안 하루 종일 누워 잠을 자고, TV나 보고, 의미 없는 나날들을 보내면서도 점점 가까워져 오는 그 시간만큼은 정확하게 헤아리고 있었다. 그래, 괜찮아. 이렇게 누군가에게는 더디고, 누군가에게는 빠르게 지나갈지도 모르는 일주일을 두 번 보내고 나서, 다시 나와 머리를 맞대고 있을 그 때 네 얼굴을 보면서 실컷 말해주지 뭐.
나도 보고 싶었어.
‘삼천원입니다~.’
지구 반대편에서 낯선 언어를 말하고 있지만, 익숙하기 그지없는 목소리를 들으며 뉴트는 통화를 종료하고 목 끝까지 이불을 끌어올려 덮었다. 가물가물 의식이 흐려졌다.
오늘은 왠지 좋은 꿈을 꿀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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